⑤ 갑골문에 나오는 방은 어느 나라인가?
지난 두 글에서 나는 배달국과 단군을 다시 읽었다. 기록은 단군이 기원전 2300년 무렵 조선을 세웠다고 말했고, 유물은 그 무렵 요서의 조양 일대에 청동기를 쓰고 성을 쌓는 나라가 있었다고 말했다.그런데 우리 기록은 모두 훨씬 뒤에 쓴 것이다. 『삼국유사』는 13세기의 책이다. 고조선과 같은 시대에 쓴 기록은 없을까?
있다. 상나라의 갑골문이다.
참고로,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경에서 기원전 1046년경까지 고고학적으로 실체가 증명된 황하 유역을 다스린 중국 왕조로 후기 수도인 은허의 이름을 따서 은나라로도 불린다.
갑골문은 거북 배딱지와 소뼈에 새긴 글자다. 상나라 왕은 전쟁, 제사, 날씨, 사냥 같은 일을 앞두고 점을 치고, 그 내용을 뼈에 새겨 두었다. 상나라의 마지막 도읍인 지금의 하남성 안양, 곧 은허에서 수많은 갑골문이 나왔다. 1936년에는 갑골을 묻어 둔 구덩이가 통째로 발굴되었고, 1973년과 1991년에도 대량으로 나왔다.
갑골문은 뒤에 고쳐 쓸 수 없는 기록이다. 땅에 묻혀 있다가 그대로 나왔고, 탁본과 해석이 모두 공개되어 있다. 그래서 갑골문은 상나라 사람들이 직접 남긴, 고조선과 동시대 기록이다.
이 글은 갑골문을 오래 연구해 온 최명희 박사의 강의를 바탕으로 썼음을 밝혀둔다.
갑골문 속의 방(方)
갑골문에는 상나라 밖의 나라 이름이 80개가 넘게 나온다. 귀방(鬼方), 인방(人方), 토방(土方) 같은 이름이다. 여기서 '방'은 나라 이름 뒤에 붙는 말이다. '귀라는 나라', '인이라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명희 박사는 갑골문의 '방'에 세 가지 뜻이 있다고 설명한다.
- 나라 이름 뒤에 붙는 말. 인방, 토방의 '방'이다.
- 제사를 받는 사방의 신.
- '방' 한 글자로 된 특정한 나라.
이 글의 주인공은 세 번째 방이다. 중국 학자들은 이 나라를 다른 방과 구별하려고 '방방(方方)'이라고 적는다. '방이라는 나라'라는 뜻이다.
방은 상나라의 맞수였다. 중국 서남대학의 이발(李發) 교수는 상나라의 군사 관련 갑골 4,423편을 정리해 2018년 책으로 냈다. 그 연구의 결론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상나라와 방방의 전쟁은 무정 초기부터 상나라 말기까지 이어졌다. (商與方方的戰爭從武丁早期一直持續到商代末期) — 李發, 『甲骨軍事刻辭整理與研究』(中華書局, 2018)
무정(武丁)은 상나라의 왕이다. 기원전 13세기 무렵 오래 나라를 다스렸고, 상나라가 가장 힘이 있던 때다. 그 무정 때부터 나라가 끝날 때까지, 상나라는 방과 싸웠다. 방은 한두 번 싸우고 사라진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상나라가 끝내 꺾지 못한 나라였다.
최명희 박사는 또 하나를 분명히 한다. 상나라 동남쪽 산동과 회하 일대의 인방은 동이(東夷)다. 갑골문의 '인(人)'이 뒤에 '이(夷)'로 적혔다. 그러나 방은 인방과 다른 나라다. 동이는 동이대로, 방은 방대로 따로 있었다.
방은 어디에 있었나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최명희 박사가 보여 준 한 장의 지도였다. 갑골문에 나오는 상나라와 방의 전투 지역을 지금의 지도 위에 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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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과 상의 전투 장소 (출처: 최명희 교수 유튜브) |
지도에서 '方' 글자는 지금의 베이징 부근, 하북성 북부에 놓여 있다. 상나라의 도읍 안양에서 보면 동북쪽이다. 빨간 별은 상나라와 방이 싸운 곳이다. 하북성 석가장, 산서성 태원과 임분, 상나라 도읍 안양 가까이, 그리고 남쪽의 상구 부근까지 이른다.
빨간 별은 방의 땅이 아니다. 두 나라가 부딪친 곳이다. 그런데 그 별들이 중원의 한복판에 찍혀 있다. 방은 상나라의 변방을 건드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상나라 도읍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갔다. 상나라는 북쪽의 큰 나라에 늘 위협받으며 살았던 것이다.
방의 위치를 두고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나는 최명희 박사의 설명을 따른다. 갑골문을 직접 읽고 연구해 온 학자가 하나하나 짚어 낸 자리이고, 상나라가 끝까지 싸운 나라가 있을 만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방은 고조선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은 어느 나라였을까.
시간을 맞추어 보자. 나는 앞의 글에서 단군이 기원전 2300년 무렵 조양 일대에서 조선을 세웠다고 보았다. 상나라와 방이 가장 치열하게 싸운 무정 때는 기원전 13세기다. 고조선이 나라를 연 지 천 년이 넘은 때다. 고조선은 그때 이미 오래되고 큰 나라였다.
자리를 맞추어 보자. 방은 상나라의 동북쪽, 하북성 북부에 있었다. 연산산맥을 넘으면 곧 요서다. 고조선이 일어난 조양 일대와 땅이 이어진다.
그러면 물어야 한다. 상나라의 동북쪽에서, 무정 때부터 상나라가 끝날 때까지 상나라와 맞설 만한 나라로 기록에 남은 나라는 어디인가? 고조선뿐이다.
최명희 박사도 같은 생각을 말한다. 동이는 상나라의 동남쪽에 따로 있었고, 고조선은 동이가 아니라 방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이 붙인 '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조상을 불렀다. 그러나 상나라 사람들은 우리 조상의 나라를 '방'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국경은 움직였다
이 지도는 하나를 더 말해 준다. 상나라 때 고조선은 지금의 베이징과 하북 일대에서 상나라와 맞섰다는 것이다. 고조선의 서쪽 경계는 난하보다 훨씬 남쪽에 있었다.
우리는 흔히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를 난하로 본다. 나도 「② 고대의 국경을 이해하기 위해서」에서 우리 땅과 중국이 연산산맥과 난하로 나뉘어 있다고 썼다. 그러나 그 선이 언제부터 국경이 되었는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
난하를 국경으로 보는 근거는 이런 기록이다. 진(晉)나라 때의 지리책 『태강지리지』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고, 장성이 여기서 시작된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고 적었다. 갈석산은 난하 하류 가까이에 있다. 이 장성은 진시황이 쌓은 장성으로 본다.
그러니 이 기록이 말해 주는 것은 진시황 이후의 국경이다. 상나라 때의 국경까지 말해 주지는 않는다. 나는 고조선의 서쪽 경계가 이렇게 움직였다고 본다.
- 상나라 때 (기원전 13~11세기): 방, 곧 고조선은 베이징과 하북 일대에서 상나라와 맞섰다.
- 연나라 진개의 침입 (기원전 300년 무렵): 고조선은 서쪽 땅을 잃었다.
- 진시황의 통일 (기원전 221년) 뒤: 난하와 갈석산이 경계가 되었다.
기원전 221년은 고조선의 어느 때일까. 『환단고기』 「단군세기」를 따르면 마지막 47세 고열가 단군이 기원전 238년에 물러났다. 그렇다면 단군조선이 끝난 뒤다. 『사기』를 따라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까지 이어졌다고 보면, 고조선의 말기다. 어느 쪽이든 난하가 국경이 된 것은 고조선의 긴 역사에서 아주 늦은 때의 일이다.
난하는 고조선 초기의 국경이 아니라 고조선 말기의 국경인 것이다.
글을 마치며
갑골문은 상나라 사람들이 남긴 기록이다. 그 기록 속에 상나라와 끝까지 싸운 동북쪽의 큰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상나라 도읍 가까이까지 밀고 들어갈 만큼 강했다. 나는 그 나라가 고조선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갑골문에는 방 말고도 눈여겨볼 글자가 또 있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부리는 '제(帝)'다. 「③ 배달국과 단군을 다시 읽다 (상)」에서 남겨 둔 물음이다. 다음 글에서는 갑골문 속의 '제(帝)'가 누구인지 살펴 보려 한다.
최명희 박사의 유튜브 강의
이 글은 아래 세 강의를 바탕으로 썼다. 갑골문과 방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께 시청을 권한다.
- 1강: 갑골문으로 밝힌 단군조선과 동이의 관계ㅣ갑골박사 최명희의 단군조선과 동이의 관계 1강
- 2강: 근세조선은 왜 동이에 집착했을까?ㅣ갑골박사 최명희의 단군조선과 동이의 관계 2강
- 3강: 단군조선의 다른 이름, 방(方)ㅣ갑골박사 최명희의 단군조선과 동이의 관계 3강
👉 다음 글 바로가기 ⑥ 갑골문 속의 제(帝)는 누구인가
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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