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환웅천황인 게시물 표시

⑥ 갑골문 속의 제(帝)는 누구인가

「 ③ 배달국과 단군을 다시 읽다 (상) 」에서 나는 물음 하나를 남겨 두었다. 『삼국유사』의 환웅은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렸다. 바람과 비와 구름이다. 그런데 상나라의 갑골문에도 바람과 비와 우레를 부리는 존재가 나온다. 제(帝)다. 「 ⑤ 갑골문에 나오는 방은 어느 나라인가? 」에서는 상나라와 끝까지 싸운 동북쪽의 나라 방을 살펴보았다. 나는 방이 고조선일 수밖에 없다고 썼다. 그렇다면 갑골문 속의 제(帝)는 누구인가. 상나라의 신인가?, 상나라의 조상인가?, 아니면 우리 기록 속의 누군인가? 이 글도 최명희 박사의 갑골문 강의를 바탕으로 쓴다. 원문 뒤의 번호는 갑골문을 모아 놓은 『갑골문합집(甲骨文合集)』의 번호다. 비와 우레와 바람에 명령하는 제(帝) 갑골문에서 제(帝)는 자연에 명령을 내리는 존재다. 몇 줄만 읽어 보자. 갑골 원문 풀이 번호 今一月帝令雨 이번 1월에 제(帝)께서 비를 내리도록 명령하실까요? 합집 14295 帝其及今十三月令雷 제(帝)께서 이번 13월에 이르러 우레를 명하실까요? 합집 14127 翌癸卯帝其令風 다음 계묘일에 제(帝)께서 바람을 명하실까요? 합집 672 제(帝)의 힘은 자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帝)는 비를 내려 한 해의 농사를 좌우했다(帝令雨足年, 합집 10139). 왕이 성을 쌓을 때는 제(帝)가 도울지를 물었다(王乍邑 帝若, 합집 14201). 다른 나라를 칠 때도 제(帝)가 도울지를 물었다(합집 6270). 농사와 성과 전쟁이 모두 제(帝)의 뜻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상나라 왕은 일 년 내내 조상과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이렇게 큰 힘을 가진 제(帝)에게는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다. 상나라 왕은 제(帝)에게 직접 빌지 못했다. 조상의 신이나 제(帝)의 사자를 통해서만 빌 수 있었다. 이것은 최명희 박사만의 말이 아니다. 갑골문을 연구한 학자들이 널리 인정하는 사실이다.  최명희 박사는 두 가지를 더 짚는다. 하나는 제(帝)가 무정 때의 갑골문에 가장...

③ 배달국과 단군을 다시 읽다 (상) — 기록이 말하는 것

지난 글 「② 고대의 국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를 나는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다"라는 말로 맺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고조선의 시작을 '단군신화'라고 부른다. 2019년 한 대학 수업에서 대학생 90명에게 단군을 물었다. 84명, 93퍼센트가 단군신화는 허구라고 답했다. 역사적 사실이라고 답한 학생은 6명뿐이었다. (『도둑 맞은 한국사』, 이덕일, 1장) 단군을 신화로 밀어낸 사람은 누구인가. 일제의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는 나라를 빼앗긴 1910년에 「단군의 설화에 대하여」를 써서 단군을 부정했다. 1929년에는 「단군고」를 썼다. 이덕일 역사학자는 그가 단군을 받드는 대종교가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이제 '신화'라는 말을 버리려 한다. 나에게 단군은 더이상 신화가 아니라 역사이기 때문이다.내가 왜 단군을 역사로 확신하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을 살펴보며 이야기 할 것이다.  단군을 전하는 기록은 여럿이고,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여러 기록이 함께 말하는 것은 뼈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일이 어디에서 있었는지는 유물과 과학에 묻는다. 이번 상편에서는 기록을, 다음 하편에서는 유물을 살펴본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두 기록 일연은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두 기록을 나란히 옮겨 적었다. 하나는 「위서」이고, 하나는 『고기』다. 「위서」내용은 짧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니, 요임금과 같은 때였다. 『고기』는 길다. 줄여 옮기면 이렇다.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두었다. 아버지가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했다.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 했다.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곡식·목숨·질병·형벌·선악을 맡아, 인간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