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한국어의 뿌리는 서요하에 있다

우리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지난 글에서 요하문명과 홍산문화를 살폈다. 만리장성 바깥, 서요하 유역에서 황하보다 이른 문명이 나왔다. 그 문명을 일군 사람들은 어떤 말을 썼을까? 2021년 11월, 이 물음에 답하는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이 논문은 한국어의 뿌리는 약 9천 년 전 서요하 유역에 있다고 말한다.

세 학문이 한꺼번에 살핀 논문

논문 제목은 「삼각 검증은 트랜스유라시아어가 농사와 함께 퍼졌음을 보여준다」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연구소의 언어학자 마르티너 로베이츠(Martine Robbeets)가 이끌었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 등 여러 나라 학자 40여 명이 함께 썼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연구자들도 이름을 올렸다.

이 논문의 힘은 방법에 있다. 연구진은 이를 ‘삼각 검증(triangulation)’이라 불렀다.
세 학문이 각자 자료를 모아 한 자리에서 맞춰 보았다.

  • 언어학: 98개 언어의 기초 낱말 254개를 모아 비교했다. 이를 통계로 분석해 언어가 갈라진 때와 곳을 거슬러 올라갔다.
  • 고고학: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청동기 유적 255곳을 묶어 문화가 비슷한 것끼리 갈래를 지었다. 연대가 측정된 곡식 유물 269점도 함께 살폈다.
  • 유전학: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나온 옛사람 뼈에서 유전체를 읽어 냈다.

트랜스유라시아어란 무엇인가

학교에서 한국어는 알타이어족이라고 배운 분이 많을 것이다. 트랜스유라시아어는 그 알타이어를 넓혔다고 보면 된다. 유럽에서 북아시아까지 이어진 다섯 어족을 한 집안으로 묶는다.

  • 튜르크어: 터키어,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 몽골어
  • 퉁구스어: 만주어, 에벤키어
  • 한국어
  • 일본어

이 말들은 말의 차례가 닮았다. 한국어처럼 동사가 끝에 오고, 낱말 뒤에 조사와 어미가 붙는다.

다만 닮았다고 한 뿌리라는 법은 없다. 이웃하며 말을 빌려 쓰다 보면 닮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언어학계에서는 이 다섯 어족을 한 집안으로 볼지를 두고 오래 논쟁해 왔다. 논문도 첫 문단에서 이를 “가장 논란이 많은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로베이츠 연구진은 빌려 쓴 말을 걷어 내고도 대대로 물려받은 말의 뿌리가 남는다고 본다. 그 뿌리를 따라 올라간 것이 이 논문이다.

9천 년 전, 서요하의 기장 농민

논문이 밝힌 것을 네 가지로 정리해 본다.

하나, 고향은 서요하다

그동안 알타이어의 고향으로 여러 곳이 거론되었다. 알타이산맥, 황하, 대흥안령산맥, 아무르강이다. 논문은 이 모두를 물리치고 서요하 지역을 고향으로 짚었다. 요하문명이 있던 바로 그 땅이다.

둘, 때는 약 9천 년 전이다

다섯 어족의 공통 조상어가 갈라지기 시작한 때는 약 9,181년 전이다. 낱말의 변화를 통계로 계산한 값이라 폭이 넓다. 그래도 신석기 이른 시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홍산문화보다도 훨씬 앞선다.

같은 계산에서 한국어와 일본어의 공통 조상어가 갈라진 때는 약 5,458년 전으로 나왔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한 갈래였다.

셋, 첫 농민이 말을 실어 날랐다

예전에는 유목민이 말을 퍼뜨렸다고 보았다. 말을 탄 유목민이 초원을 달리며 말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를 반박했다. 말을 퍼뜨린 이들은 서요하의 첫 농민이었다.

서요하에서는 9천 년 전 무렵 기장 농사가 시작되었다. 말의 나이와 농사의 나이가 맞아떨어진다.

말 속에도 증거가 남아 있다. 연구진이 되살린 조상어에는 ‘밭’, ‘뿌리다’, ‘심다’, ‘기르다’ 같은 농사 낱말이 있다. 기장과 피를 가리키는 말과 ‘삼’, ‘베를 짜다’ 같은 말도 있다. 집에서 기른 짐승은 돼지와 개뿐이었다. 말과 소와 양을 가리키는 말은 한참 뒤에 들어왔다. 초원의 유목민이 아니라 한곳에 자리 잡고 밭을 갈던 사람들의 말이다.

넷, 한반도로 건너온 길

서요하(아래 그림의 3번 영역)에서 갈라진 말들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몽골어는 북쪽 몽골 고원으로, 튜르크어는 서쪽 초원으로 갔다. 퉁구스어는 동북쪽 아무르강 유역으로 갔다. 한국어는 동쪽 한반도로 건너왔다. 일본어는 한반도를 거쳐 일본 열도로 들어갔다.

트랜스유라시아어의 뿌리
트랜스유라시아어의 뿌리 (3번 영역이 공통 뿌리가 되는 지역)

고고학 자료도 같은 길을 가리킨다. 유적 255곳을 묶어 보니 서요하의 신석기 문화가 한 뭉치를 이루었다. 그에서 두 갈래가 나왔다. 하나는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 문화다. 다른 하나는 아무르강·연해주·요동의 신석기 문화다. 기장 농사는 약 5,500년 전 한반도에 닿았다. 논문은 이 무렵 서요하의 농민 일부가 한반도로 옮겨 와 한국어를 가져왔다고 본다.

남해안 신석기인의 뼈가 말하는 것

말과 유적만이 아니다. 사람의 뼈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연구진은 한반도 신석기 유적에서 나온 사람 뼈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여수 안도 조개무지, 통영 연대도,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 같은 남해안 유적들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여수 안도의 신석기인은 유전적으로 홍산문화 사람과 이어져 있었다. 논문은 안도인의 조상을 모두 홍산 계통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연대도와 장항의 사람들도 홍산 계통의 비중이 높았다.

물론 일본 열도의 조몬인 계통도 섞여 있었다. 통영 욕지도의 신석기인처럼 조몬인 계통이 대부분인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흔적은 때가 지나며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조몬인 계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생각해 보자. 서요하에서 수천 리 떨어진 한반도 남해안이다. 그곳에 홍산문화 사람과 같은 핏줄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말이 건너온 길을 사람도 함께 건너왔다.

말과 문명이 한 땅에서 나왔다

논문의 결론을 다시 적는다. 한국어의 뿌리는 서요하의 첫 농민에게 있다. 언어학과 고고학과 유전학이 같은 곳을 가리켰다.

논문은 하나를 더 말한다. 동북아시아에는 기장 농사의 중심이 두 곳 있었다. 황하에서는 중국어가 속한 중국·티베트어족이 나왔다. 서요하에서는 트랜스유라시아어가 나왔다. 그리고 트랜스유라시아어의 조상어와 유전자에서는 황하의 영향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글에서 중국이 요하문명을 중국의 것이라 주장한다고 썼다. 이 논문은 그 반대를 가리킨다. 서요하의 말은 황하의 말과 뿌리가 다르다. 그 말의 한 갈래가 오늘 우리가 쓰는 한국어다.

나는 우리 민족의 고대사는 요하문명이 일어난 이 지역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언어가 지나 온 길은 결국 사람이 지나 온 길이기 때문이다.

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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