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우금치 아리랑 이야기 (하편 마지막회)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아리랑이 있을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리랑을 안다. 그런데 아리랑은 하나가 아니다.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경기아리랑… 유네스코는 이 땅에 전해지는 아리랑을 약 60여 종, 3,600여 곡으로 추산한다. 지역마다, 시대마다, 심지어 목적에 따라 새로운 아리랑이 계속 태어났다. 후렴구 하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만 있으면 누구든 자기의 한(恨)을 실어 새 아리랑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산골의 나무꾼도, 독립운동가도, 이름 없는 며느리도 저마다의 아리랑을 남겼다.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이것은 무엇을 노래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르는 아리랑 후렴구,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아리랑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몸이 쓰리다"라는 말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마음과 몸의 고통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쌓이고 쌓여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올 때, 우리 조상들은 그것을 "아라리가 났다"고 노래한 것이다.
아리랑은 결국, 참다 참다 넘쳐버린 고통과 한이 고개를 넘어가며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금치 고개를 두 차례 다녀오고나서 불현듯 질문 하나에 붙들리고 말았다.
우금치 아리랑은 왜 없을까?
그 많은 아리랑 중에, 그 많은 고개 중에, 왜 우금치 아리랑은 없을까?
우금치 고개는 이 땅에서 가장 많은 한이 쌓인 고개 중 하나다.
1894년 11월 9일, 동학농민군 2만명은 이곳에서 제 나라 백성 죽여달라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인 무능한 임금으로 인해, 근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의 총구 앞에서 죽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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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치 터널 끝에서 찍은 우금치 발치의 모습. 저 끝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
나는 이 고개를 지금까지 두 번 찾았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 함께였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비바람이 몹시 몰아치던 날 이 고개에 섰다. 그날 나를 사로잡은 것은 슬픔과 부끄러움이었다. 백 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이 고개 위에는 제대로 된 위령비 하나 없었다. 아,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나에게 시비를 걸 수도 있다. 거기에는 이름도 자랑스런 "동학혁명위령탑"이 서 있으니까. 그런데 그 위령탑은 일제강점기 시절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을 쓰던 관동군 장교가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것을 미화하기 위해 세운 탑이라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아는지 먼저 묻고 싶다.
아버지와 우금치 고개를 처음 방문한 후, 나는 우금치 고개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방문은 2024년 삼일절, 공주가 고향인 지인과 함께였다. 이번에는 비는 없이 바람만 강하게 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첫 방문 후 쓰기 시작했던 그 글이, 어느새 "우금치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슬픔과 부끄러움에서 시작한 감정이, 어느 틈엔가 흥과 희망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우리 민족이 아리랑을 부르며 한과 고통을 흥으로 승화시켜 고개를 넘어가듯이, 나도 우금치 고개를 우금치 아리랑을 부르며 넘어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우금치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우금치 아리랑
이 시를 쓰면서 나는 전통 아리랑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려 했다. 후렴구는 바꾸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 담기는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이 아니라 못난 임금과 못난 후손— 과거의 무능과 오늘 우리의 무심함을 나란히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애도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당부와 희망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인간이 하늘 대접 받는 세상"이라는 구절은 동학이 품었던 인내천(人乃天) 사상 그대로다. 우금치에서 스러진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이 바로 그 세상이었다.
시, 노래가 되다
시를 쓴 지 일 년쯤 되었을까? 물론 시를 다 쓰고 주변에 작곡을 좀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도 해보았지만 아쉽게도 만들어진 노래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는 요즘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이 노래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AI의 도움을 받아 이 시를 실제 노래로 만들었다. 노래를 만들고 처음 "우금치 아리랑"을 들었을 때 나는 내 마음에 흡족한 느낌이 들어 AI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유튜브에서 "우금치 아리랑"을 들어보실 수 있다.
다시, 고개를 넘으며
아리랑은 쌓이고 쌓인 고통과 한이 고개를 넘어가며 부르는 노래다.
나에게 우금치 고개는 처음에는 슬픔과 부끄러움의 고개였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제 이 고개를 우금치 아리랑을 부르며 넘어간다.
그 많던 아리랑 중에 없었던 "우금치 아리랑"이 생긴 것이다. 언젠가 내 아이들과 우리 후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우금치 아리랑"을 신명나게 "떼창"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요즘 그런 상상을 하면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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